10달러에서 30만달러…‘꿈’ 이룬 레오
'쿠바 특급' 레오, 첫 해에 코리안 드림 이뤘다
프로배구 NH농협 2012~2013 V-리그 시상식은 레오 레이바 마르티네스(23·삼성화재)를 위한 무대였다.
지난달 28일 대한항공과의 챔피언결정 3차전 직후 챔프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레오는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정규리그 MVP까지 거머쥐었다.
신치용 감독이 선물한 멋진 정장을 차려 입고 시상식장을 누빈 레오는 ‘코트의 왕자’에서 ‘시상식의 왕자’가 됐다. 2005~2006시즌부터 V-리그를 거쳐간 35명의 남자 외국인 선수 중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휩쓴 경우는 단 3명(숀 루니·안젤코 추크· 가빈 슈미트)에 불과할 정도로 이루기 힘든 과업이다.
최고의 한해를 보낸 레오는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레오 있음에…’ V7 달성한 삼성화재
올해도 V-리그 정상은 삼성화재의 몫이었다.
수학 공식처럼 삼성화재의 우승 공식은 틀림이 없었다. 프로배구 출범 첫 해인 2005년 초대 챔피언에 올랐던 삼성화재는 정규리그만 6회, 챔피언결정전 7회(6회 연속)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2~2013시즌 통합챔피언 등극의 중심에는 ‘쿠바 특급’ 레오가 있었다. 206㎝에 84㎏의 호리호리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파이크는 강력했고 365㎝에 이르는 높은 타점은 상대 블로커를 압도했다. 한 박자 빠른 스윙은 수비 타이밍을 빼앗았다.
레오는 올 시즌 정규리그 득점왕(867점), 공격종합 1위(성공률 59.69%), 오픈공격 1위(성공률 55.43%), 퀵오픈공격 1위(성공률 75%), 시간차 공격 1위(성공률 72.29%), 후위공격 1위(성공률 60.49%) 등 10개 공격지표 중 6개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의 활약은 더욱 빛났다. 정규리그 경기당 평균 30득점을 책임졌던 레오는 대한항공과의 챔피언결정전 3차례 경기에서 평균 40득점을 쏟아 부었다. 공격성공률은 58.5%로 1.2P% 떨어졌지만 점유율은 62.5%로 오히려 16.8P% 늘었다. 큰 경기에서의 그에 대한 의존도가 컸지만 레오는 무리없이 소화해냈고 삼성화재를 통합우승으로 이끌었다.
▲10달러에서 30만달러…‘꿈’ 이룬 레오
한국 땅을 밟기 전 레오는 무명 선수에 지나지 않았다. 쿠바에서 태어난 레오는 8살 때 배구를 처음 접했다. 15살부터 5년 동안 쿠바 청소년대표팀과 성인대표팀을 오갔다. 나름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한국을 찾았을 때에는 상황이 달랐다. 건강한 몸에 걸친 청바지와 티셔츠 한 벌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18세 때 선수로 뛰며 받은 돈은 한 달에 10달러(약 1만1000원) 남짓이었고 생계가 불가능했다.
결국 레오는 푸에르토리코와의 원정경기 때 미국 대사관을 찾아 망명을 신청했다. 살기 위해 망명을 택한 레오의 앞길에는 2년 간 선수 자격 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해외로 망명하는 자국민이 많은 탓에 쿠바가 마련한 고육지책이었다. 2011년에야 푸에르토리코리그에 선수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
2011~2012시즌 팀 우승을 이끈 레오는 올 시즌 러시아리그의 러브콜을 받고 파켈로 둥지를 옮겼다가 공중에 붕 뜨게 됐다. 외국인 선수 정원이 꽉 찬 상태에서 오갈 데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때 삼성화재가 손을 내밀었다. 레오에게는 튼튼한 동아줄이었다. 그로부터 한 시즌이 지났다. 120달러의 연봉을 받던 레오의 몸값은 2500배가 뛰었다. 올 시즌 레오의 연봉은 각종 인센티브를 제외하고도 28만 달러 정도였다. 그렇게 레오의 코리안 드림이 완성됐다.
▲끝이 아닌 시작…레오는 성장 중
한국배구 최고의 명장인 신치용 감독의 손을 거쳐 간 외국인 선수는 한결같이 성장을 거듭했다.
신 감독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보석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2005~2006시즌 아쉐와 같은 해 프리디의 실패를 딛고 맞이한 안젤코 추크(30·2007~2009)부터는 예외가 없었다. 가빈 슈미트(27·2009~2012)와 레오까지 성공의 궤적을 따르고 있다.
2007~2008시즌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은 안젤코는 경기당 평균 26.76점을 기록했지만 다음 시즌 27.13점을 올렸다. 가빈의 경우 3시즌 동안 평균득점은 부침이 있었다. 하지만 2009~2010시즌 53.97%였던 공격성공률은 마지막 2011~2012시즌 58%까지 치솟았다.
사실 레오는 신 감독에게 있어 물음표를 품게 하는 존재였다. 206㎝의 큰 키에 비해 몸무게는 고작 76㎏였다. 체력과 파워가 받쳐줄까 의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시즌 개막 미디어데이 때 아무도 레오를 주목하지 않았다. 쿠바 국가대표를 지낸 오레올 까메호 드루티(27· LIG손해보험)에게 밀렸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레오는 우려를 불식했다. 시즌 개막전부터 개인 최고득점(51점)을 기록하며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첫 경기를 마치고서야 비로소 신 감독은 “배구에 대한 이해도는 가빈이 처음 올 때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조만간 가빈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점쳤다. 시즌을 마친 상태에서 주위에서는 더 이상 가빈을 찾지 않는다. 23살 레오가 보여줄 다음 시즌이 궁금할 뿐이다. 신 감독의 조련을 거친 모든 외국인 선수가 그랬듯이 레오 역시 성장을 거듭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 시즌에도 삼성화재와 함께 하기로 일찌감치 약속했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