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년 선수층 육성 시급…프로는 실력과 쇼맨십 겸비해야

지난 한 해 프로배구를 위해 숨가쁘게 달려온 구자준(63)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가 취임 두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 【서울=뉴시스】강진형 기자 = 구자준 한국배구연맹 총재가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3.12.02

우리카드의 드림식스 인수, 러시앤캐시 창단 등 배구계에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하다 보니 지난해 11월 23일 취임한 뒤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났다.

스스로 기업인이 안 됐으면 운동선수가 됐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평소 스포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인 구자준 총재 덕에 프로스포츠의 막내격인 배구가 '겨울스포츠의 꽃' 프로농구를 능가할 수준까지 왔다.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배구경기를 챙겨보는 꼼꼼함으로 배구판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구자준 총재. 기업인으로서의 냉정한 현실 판단능력과 발자국을 쉬이 어지럽히지 않으려는 책임감이 균형을 이뤄 프로배구는 오늘도 힘차게 일보전진하고 있다.

뉴시스는 지난 28일 구자준 총재를 만나 프로배구가 처한 현실과 그가 제시하는 청사진을 들었다.

외형적인 성장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그는 "밑으로는 유소년 선수들을 육성하고, 프로답게 보다 수준 높은 실력과 쇼맨십을 겸비해 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배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구자준 총재와의 일문일답

- 새 시즌 개막 후 한 달이 지났다. 첫 달 1라운드를 평가한다면.

"총재 취임 뒤 올해로 두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다행히 시청률이 좋아서 나름대로의 보람을 느낀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남자 팀이 한 개 늘어나 7개 팀이 됐다. 예전에는 남녀 팀 수가 맞아서 리그 운영에 있어 시너지 효과를 냈는데, 올해는 균형이 안 맞다보니 전체관중을 집결하는 과정에서 산란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관중 수는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특히 네이버 중계를 통해서 매 게임 2만5000뷰 내지는 빅경기(삼성화재-현대캐피탈)의 경우 3만 뷰를 넘기는 것을 봤을 때는 상당히 관중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 같다."

- 올해 특별히 내세우고자 하는 목표가 있나.

"4년 임기를 모두 채울 수 있는 상황이라면 계획을 세워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 총재의) 잔여 임기(~2014년 6월)를 맡아서 하다보니 시간적인 아쉬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총재 부임 후에는 우리카드 인수와 러시앤캐시 창단이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중장기 계획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른 부분은 크게 신경쓸 수 없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여러가지 일을 시작했다. 가장 괄목할 만한 일로는 단체 (KOVO)운영을 투명하게 이끈 점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FA관련 규정, 정관 개정 등을 수정 보완한 일을 내세울 수 있다. 취임 후 만 1년이 지났지만 부족한 감이 있다. 남은 임기 동안 미흡한 제도개선 부분을 정리해 나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스스로 다사다난했다고 평가한 프로배구 10년에 대한 의미는 무엇이고 향후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프로의 길을 가고 있는 배구는 두 가지 측면을 봐야 한다. 첫째, 아마추어보다 실력이 좋아야 한다. 둘째, 실력도 좋아야 하지만 관중을 끄는 쇼맨십이 있어야 한다. 10년 차가 됐는데 두 가지 측면에서 아직까지 조금 미흡한 측면이 있다. 30년 역사를 가진 야구는 상당히 성숙해 있고 관중에게 접근하는 노하우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아직 배구는 부족하다. 출범 10주년을 맞아 개선할 점은 개선해 관중에게 가까이 가고, 수준 높은 실력을 보여주는 프로배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시청률 면에서 농구를 뛰어넘어 겨울스포츠의 꽃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 같다. 이 같은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현재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농구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만약에 농구와 똑같은 조건으로 경기 수가 많아진 상황을 가정했을 때에도 같은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부분에서는 확답을 드리기 힘들다. 상대 비교가 아닌 배구만의 절대 인기가 더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배구가 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현재 남자 7개, 여자 6개 팀이 있는데 다른 프로스포츠에 비해 적은 감이 있다. 향후 팀 수를 늘려 양적인 활성화를 이끌어 낸다는 방안을 갖고 있는지.

"구단 숫자만 늘리는 게 만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녀 초·중·고 선수를 모두 더해봐야 24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녀 프로팀이 13개나 된다. 보유한 배구 선수층에 비해서 프로팀은 현재 많은 수준이다. 잘못하면 질이 떨어질 수 있다. 남자부는 1개 팀이 늘어 7구단 체제가 됐지만 경기력적인 측면에서 아직은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현재보다 더 수준높은 경기를 하면서 팀 숫자도 늘어나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외형적으로 파이를 키우는 것보다는 초·중·고 유소년 선수층이 두꺼워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프로의 자산이 된다. 연맹에서도 이를 위해 대한배구협회와 함께 신경을 다각도로 쓰고 지원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 당분간 남자 구단의 경우 신생팀 창단은 어렵다고 봐도 되는가.

"당장은 힘들겠다. 이제 7구단 체제에서 안정화되고 있는 과정이다. 현재 러시앤캐시도 (경기력 측면 등에서)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차차 나아지겠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배구의 재미가 반감이 된다. 기본적인 토양을 다지고 난 다음에 신생팀 창단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총재)연임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음 임기 내에서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 배구팀이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이다. 고른 지역 연고 정착을 위해 염두에 두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물론 큰 틀에서 봤을 때 배구가 전국적으로 퍼지고, 전국 연고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집중력이 분산될 우려가 있다. 이동 거리가 멀다보면 선수 피로나, 다른 문제들도 불거질 수 있다. 단기적으로 풀지 못하겠지만 장기적으로 프로배구가 부산·광주·대구 등 전국적으로 뻗어나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 종목을 불문하고 프로스포츠는 스타 발굴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다. 스타마케팅을 활성화시킬 구체적인 방안을 갖고 있나.

"스타마케팅은 필요하다. 장기적인 흐름으로 봤을 때 배구에서도 스타마케팅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김연아· 박세리· 박태환 등 롤모델로 삼을 만한 선수들이 나와야 그 분야로 지원자들이 늘어나게 된다. 배구도 김연경· 문성민 등의 뒤를 이을만한 대형스타들이 나와야 전반적으로 배구인들도 증가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타성도 기본도 실력에서 나온다. 핸드볼 윤경신의 경우 실력도 뛰어난 데다가 인물도 겸비하고 있어 모든 핸드볼 선수들의 희망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 배구계 전반적으로 봤을 때 특정 팀의 독주체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전력을 상향 평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이번 시즌 1라운드에서 삼성화재가 선두를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2라운드부터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러시앤캐시는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실력이 늘어날 것이다. 한국전력, 우리카드 등 어느 하나 만만한 팀들이 없다. 특정팀의 독주 시대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 외국인선수(용병)들이 국내 배구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저해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용병제도는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용병 없이 우리끼리 하면 세계무대에 나가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높은 벽에다 때려봐야 한다. 세계배구선수권 같은 대회에 나가면 2m가 넘는 선수들이 블로킹을 뜨는 데 어떻게 때려야 할지 모르게 된다. 그나마 용병이 있기 때문에 면역력이 생기고 있다. 과거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축구 강국이었다가 몰락한 이유를 들여다 봐야 한다. 선수들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해외에 나간 사우디 선수들을)자국으로 불러들였는데 그 여파가 지금까지 오고 있다. 배구도 몰빵배구라는 지적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세계적인 선수가 한국에 와서 경기를 할 수 있고 그런 볼을 막아보고 디그(dig)해 보면서 국내 선수들의 실력도 늘어나게 돼 있다. 용병제도를 없앤다면 오히려 한국배구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발전이 저해될 것이다. 터키처럼 용병 수의 제한이 없어 2~3명이 뛴다면 문제가 될지 몰라도 현재 1명 정도 용병을 두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높은 것이 문제 아닌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외국인 선수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도 오래 가지 못한다. 체력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용병만을 활용할 수도 없다. 용병제도를 둠으로써 전체적으로 얻는 이익에 반해 문제로 지적되는 그 정도 단점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할 수 있다고 본다."

- 선수들이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제)으로 인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샐러리캡은 당장은 필요하다. 야구나 축구는 많이 풀려있는 상황이다. 배구는 구단 수도 몇 개 안되고 위기의 상황에 있는데 여기서 풀어주게 된다면 문제가 된다. 물론 캡 자체도 서서히 올라가게 돼 있다. 연봉은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것이 맞다. 당장 풀어서 자본의 논리로 특정팀이 좋은 선수를 많이 데려가면 선수들 개인에게는 단기적으로 이익이 될 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배구가 죽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관중을 잃게 되면 선수들의 연봉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적정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전제로 연봉이 전체적으로 올라가는 것은 맞지만 아직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유소년 배구를 활성화 시키기 위한 연맹 차원의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돼 있나.

"일일이 나열할 수 없지만 스포츠토토 자금 지원과 여러 프로그램 등을 통해 현재도 나름대로 연맹에서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단, 주최 자체는 대한배구협회가 되어야 한다. 제가 총재로 있는 한 모든 것을 도울 예정이다. 겉으로 표는 안나지만 노력하고는 있다. 유소년 배구 활성화를 위해 매년 배구협회에 6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 정관 개정 등 연맹이 추가적으로 수정하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면.

"옛 규정이 무조건 틀렸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만들어질 당시는 그것이 나름대로의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그때그때 고쳐나가면 된다. 연맹은 올해 FA자격 기준(6시즌→5시즌)을 한 차례 완화시킨 바 있다. 선수권익과 구단권익이 상충하는 일이 없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도 선수와 구단의 의견을 수렴해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

- 선수들의 연봉, 은퇴 후 삶을 대비하기 위한 재교육 등 권익증진을 위한 계획이 있다면.

"현재 프로배구 등록선수 200여 명 가운데 한 해에 은퇴자들이 10여 명 된다. 이 가운데 코치·감독 등 지도자로 이어지는 경우는 한정적이다. 은퇴 후 심판의 길을 걷는 것도 은퇴 후를 대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 국제심판 자격을 갖춘 사람은 김건태 주심 뿐이다. 후진을 양성해야 할 때다. 이 외에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다양한 길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아마추어 때 선수들이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산악인 고(故) 박영석 대장의 2주기 추모를 위해 히말라야 현지에 갔다 오는 등 평생 등산 쪽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배구계를 이끌고 가는 입장에서 등산으로부터 어떤 영감을 얻나.

"산 뿐만 아니라 운동이라면 다 좋아해 챙겨보는 편이다. 배구 경기는 물론 야구·축구·농구· 세팍타크로와 크리켓까지 본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가운데 LIG손해보험이 배구단을 갖고 있어서 우연한 계기로 총재까지 하게 됐다.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총재 역할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 거시적인 측면에서 스포츠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스포츠는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수 있는 대(對) 국민 서비스 측면의 성격이 있다. 정부가 잘 못해도 스포츠나 연예가 잘 해서 사회가 안정되는 면이 있다. 인기 스포츠일수록 국민들에게 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한다."

- 좌우명이 있다면.

"서산대사의 詩句(시구)인 '답설야준거 불수호란행(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을 좋아한다. '눈덥힌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러히 함부로 가지 말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라는 의미가 주는 울림이 있다. 기업인으로서의 사명의식과도 잘 맞는다. 리더의 위치에서 역사에 부끄럼 없이, 내가 걸었던 길을 다른 사람이 보고 따라 왔을 때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심사숙고를 하고 판단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구연맹 총재로서 배구 기반을 망가뜨리면 역사적으로 후퇴하게 된다. 발걸음을 어지럽히지 않고 연맹을 끌고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두 번째로 '최선을 다해놓고 심판을 기다려라'는 평범한 말을 좋아한다. 연맹 직원들에게도 일단 일은 열심히 하고 좋은 결과를 기다리라는 말을 자주 하고는 한다."

▲ 【서울=뉴시스】강진형 기자 = 구자준 한국배구연맹 총재가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3.12.02

[구자준 총재 프로필]

▲1950년 경남 진양 출생 ▲1968년 경기고 졸업 ▲1970년 미국 캔자스주립대·미주리주립대 수료 ▲1974년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2011년 한양대학교 명예 경영학 박사 ▲LG정밀 부사장(1994~1999년) ▲LG화재 부사장(1999~2000년) ▲럭키생명 대표이사(2000~2002년) ▲LG화재 대표이사(2002~2005년) ▲LIG손해보험 대표이사·부회장(2005~2008년)·회장(2009~2013년 6월) ▲LIG손해보험 고문(2013년 6월~) ▲한국배구연맹총재(2012년11월23일~)

【서울=뉴시스】대담/박범신 스포츠레저부장 겸 부국장·정리/김태규 기자·사진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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