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철(53) IBK기업은행 감독이 창단 2년 만에 팀을 '통합챔피언'으로 이끌며 여자 배구계의 새로운 명장으로 우뚝 섰다.

코치만 '12년' 이정철 감독, 준비된 명장의 준비된 우승

이정철(53) IBK기업은행 감독이 창단 2년 만에 팀을 '통합챔피언'으로 이끌며 여자 배구계의 새로운 명장으로 우뚝 섰다.

▲ IBK기업은행 이정철감독.

이 감독이 이끄는 기업은행은 29일 오후 7시 경북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2~2013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5전3선승제) 4차전에서 GS칼텍스를 3-1(25-18 20-25 25-19 25-21)로 이겼다.

앞선 1차전과 2차전에서 2승을 챙긴 기업은행은 이날 1승을 더하며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정규리그 1위(25승5패·승점 73)로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한 기업은행은 4대 프로스포츠(야구·축구·농구·배구) 역사상 처음으로 창단 '2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진기록까지 세웠다.

대업을 이룬 이 감독은 "힘든 경기 끝에 통합우승을 차지하게 돼 정말 기쁘다. 3차전 역전패의 충격을 극복하고 거둔 승리라서 더욱 값진 것 같다"며 "선수들도 잘 만났고 올해 팀 구성도 좋았다. 비시즌 동안 힘든 훈련을 받느라 고생한 기업은행 16명의 선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신인과 노장의 절묘한 조화가 기업은행의 우승에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창단 첫 해 '외인구단'으로 불리던 팀을 '챔피언'의 자리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이 감독이었다.

▲ IBK기업은행 이정철감독.

지난 2010년 기업은행의 창단과 동시에 배구 팬들 앞에서 나타난 이 감독은 이미 준비된 지휘자였다. 프로배구 출범(2005년) 이후 팀을 맡지 않았을 뿐 그는 꾸준히 내공을 쌓고 있었다.

이 감독은 1989년 성균관대학교(1989~1992년) 코치를 맡으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효성 여자배구단(1992~1994년), 호남정유(1994~1997년), 현대건설(1999~2001년), 여자배구 국가대표팀(1998·2005년)의 코치와 흥국생명(2001~2003년), 여자배구 청소년팀(2004), 여자배구 국가대표팀(2007~2008년)의 감독을 두루 거쳤다.

지도자 생활 24년, 그 가운데 코치만 12년을 했다. 지금까지 함께 호흡을 맞춰왔던 선배 감독들만 해도 수 없이 많다. 특히 코치로서 보낸 13년은 그에게 더 없이 좋은 '지도자 교육'이 됐다.

2005년 프로 배구가 출범 한 뒤에도 국가대표팀 코치와 감독으로 활약했던 그는 지난 2010년 기업은행의 감독직을 수락했다. 그리고 창단 2년 만에 신출내기 '막내 구단'을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통합우승팀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정철 매직'이었다.

이 감독은 "수많은 선배 감독들을 모시며 코치 생활만 13년을 했다. 그 사이 좋은 기록들도 많이 거뒀고 배운 점도 많다. 코치로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고 생각한다"며 "코치 시절 선배 감독들이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에게는 언제 저런 기회가 올까'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게도 드디어 '그런 날'이 왔다"고 지난날의 애환을 털어놓았다.

단순히 운이 좋아 거둔 우승이 아니다. 뒤늦게 프로무대에 뛰어든 기업은행은 한참 앞서 있던 '선배 구단'들을 따라잡기 위해 더욱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감독은 '독사'라는 별명까지 얻어가며 선수들을 훈련시켰다.

그는 "아무래도 신생구단이다 보니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다"며 "여건이 좋지 않았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열심히 훈련했다. 다른 팀보다 적어도 하루 1~2시간씩은 더 연습을 했을 것이다. 나 역시 비시즌 기간에도 거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기업은행의 '깜짝 우승'이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님을 설명했다.

▲ IBK기업은행 이정철감독.

선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던 이 감독은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에서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만 한다면 몽둥이까지 맞을 각오가 돼 있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말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선수들은 감독의 뜻을 이뤄냈고 '애교 섞인' 구타로 비시즌 기간 동안의 한을 털어냈다.

여자배구 우승팀의 매운 손맛을 본 이 감독은 "아까 봤겠지만 선수들이 나를 발로 걷어차더라. 그래도 '쇠몽둥이'는 가져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며 "맞았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이정도 맞는 걸로 또 우승을 할 수 있다면 밤새도록 맞을 수 있다"고 우승의 달콤함을 에둘러 표현했다.

이 감독은 남자부 우승팀 신치용(58) 삼성화재 감독과의 특별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그는 "삼성화재가 V7을 달성한 뒤 '축하드린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단 세 글자 '고생해'라는 답장이 왔다"며 "사실 3차전을 이겼으면 우리가 먼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신 감독님의 문자에 '잘 버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답장을 받고 살짝 삐쳤다. 그래서 나도 답장은 안했다"고 특유의 입담을 내세워 신 감독과의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다.

이날 마침내 챔피언에 등극한 이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신 감독님으로부터 '축하한다'는 문자를 받았다"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구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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