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것 같지 않던 삼성화재의 독주를 멈춰 세우고 창단 첫 우승을 일궈낸 OK저축은행의 김세진(41) 감독이 "기적을 일으켰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OK저축은행은 1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4~2015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삼성화재를 3-1(25-19 25-19 11-25 25-23)로 제압했다.

시리즈 전적 3전 전승을 거둔 OK저축은행은 창단 2년 만에 정상을 밟는 쾌거를 일궈냈다.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아닌 다른 팀이 트로피를 차지한 것은 OK저축은행이 처음이다. 우승상금은 1억원.

이제 막 초보 딱지를 뗀 2년차 김세진 감독은 안정적인 팀 운영으로 우승 사령탑의 칭호를 얻었다.

우승 티셔츠와 모자를 쓴 채 기자회견실에 들어선 김 감독은 "소감이 뭐가 있을까"라며 잠시 생각한 뒤, "기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감독은 "우승은 하늘이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들과 팬들의 힘이 하나가 돼 기적을 일으켰다"고 소감을 전했다.

선수 시절 늘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김 감독은 은퇴 후 지도자가 아닌 해설자의 길을 택했다. 바깥을 맴돌던 김 감독은 2013년 5월 OK저축은행의 사령탑 제의를 받고 제3의 배구인생을 시작했다.

코치를 거치지 않고 곧장 지휘봉을 잡은 그에게 우려 섞인 시선이 쏠렸다. 결과는 2년 만의 정상 등극이었다.

김 감독은 "최윤 구단주께서 경험도 전혀 없고 외야에서 놀던 놈한테 감독직을 맡기셨는데 정말 모험이었다. 믿어주셔서 감사드린다. 내가 뭘 안다고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선수들에게 두고두고 보답해야 할 것 같다. 정말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V-리그는 신치용 감독과 김호철 감독 양강 체제로 흘러왔다. 앞선 10차례 챔프전에서 신 감독이 10차례, 김호철 감독이 2차례 우승컵을 차지했다. 빈틈을 처음으로 파고든 이가 바로 김세진 감독이다.

김 감독은 스스로의 지도력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건방지게 이야기하자면 패러다임을 바꾼 것 같다"고 자평했다.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것을 계속 했다. 오른손잡이로 시작해 왼손으로, 세터에서 공격수로 바꿨다.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은 아직도 안 깨지고 있다"는 김 감독은 "창단팀에서 연속 우승도 했고 국가대표 시절 4년 연속 주장도 했다. 남들 안 한 것은 다했다"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수시절을 돌아봤다.

선수로서의 명성을 읊어나가던 김 감독은 "지도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자신감과 진정성이 낳은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에 흡수되려고 노력한 것이 내 지도력의 특징"이라며 감독으로서는 한껏 자세를 낮췄다.

이번 우승으로 김 감독은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V-리그를 제패한 첫 번째 배구인이 됐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에는 몸으로 내 할 일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신경써야한다. 부담스러웠다. 계속 도전과 모험을 해야 하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 선수들로 꾸려진 OK저축은행은 창단 2년 만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김 감독은 벌써부터 다음 시즌을 걱정하고 있었다. 특히 그는 젊은 선수들에게 찾아올 수 있는 자만을 경계했다.

김 감독은 "챔프전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다. 이것이 건방이 되지 않도록 다잡고 가야 한다"면서 "다음 시즌에 베스트 전력이 나온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지금 끝났지만 나는 다음 시즌 준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또한 "삼성화재의 아성을 무너뜨렸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화재는 쉽게 안 무너진다. 삼성화재가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 때 내 입으로 직접 이야기하겠다"고 덧붙였다.

챔프전에서 우승한다면 레깅스를 입고 걸그룹 EXID의 춤을 추겠다고 한 공약에 대해서는 반드시 지키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감독은 "도와주시면 EXID와 같은 무대에서 할 지 누가 아느냐. 온 국민이 다 볼 수 있도록 SNS에 뿌릴 수도 있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끝으로 김 감독은 세월호 참사로 실의에 빠진 안산팬들에게 조심스럽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OK저축은행은 지난 1월 팀 엠블렘을 'We Ansan!'으로 바꾸고 시민들과 아픔을 나누려고 노력했다. 유니폼에는 '위안'이라는 두 글자를 새겼다.

김 감독은 "가슴에 'We Ansan'을 적고 '위안'을 강조했지만 누가 누구를 위해 건방지게 위로를 할 수 있냐. 희생자와 가족들이 겪은 아픔을 알 수 없다"면서 "그저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정성 있게 꾸준히 함께 하려는 모습이 진정한 위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를 보고 위안을 삼으라는 말은 안 하겠다. 진정성 있게 끝까지 하겠다"고 말했다. 【발리볼코리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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